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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슈] 괴담 2

슈승님오시 2018. 3. 6. 20:49
* 1편이 미카슈여서 미카슈라고 달아두긴 했지만... 미카슈 요소는 없고 호러만 잔뜩입니다

* 약 코가레이코가, 약 리츠마오 요소가 있습니다만 역시 호러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 오타와 비문은 물론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뽑아낸 거라 이상한 부분이 상당수 입니다()








오늘은 오후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돌과 학생들은 공연을 위해 방음 연습실을 빌려 연습을 하거나, 외부 활동이 잡혀있다면 멤버들과 함께 학교를 벗어나는 등 제법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UNDEAD는 오늘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갖은 핑계로 레슨을 미루고 도망치는 카오루를 잡으려 교내를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데에 시간을 한참 쏟을 터였다. 그런 면에서는 어찌 생각한다면 다행일지도, 코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가방을 챙겨 들었다.  어차피 딱히 시간을 보낼 거리가 없다면 부실에라도 가 악기 연습이라도 하는 게 생산적이리라.

점심시간이 끝나고 30여분이 지나서 인지 복도는 조용했다. 간간히 댄스룸이 있는 방향에서 들려오는 반주 음악이라든가, 노랫소리를 제외하고는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원래도 이 부근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조용한 곳이었던가? 뜬금없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지만 코가는 곧 쓸데 없는 생각이라며 털어냈다.


"왁, 깜짝이야! 흡혈귀 네놈, 또 뭘 하고 있는 거냐?!"


부실에 온 것이 분명 자신 혼자는 아닐 거라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누군가와 갑자기 마주치는 것은 별개였다. 부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온통 어두컴컴한 부실의 한 가운데에 음침하게 서있는 레이였다.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 틈으로 간신히 새어들고 있는 빛이 아니었다면 그게 누구인지 알아 차리는 것도 한참이 걸렸을 것이 분명한 어둠이었다. 식겁하는 코가의 목소리에 레이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려 코가를 바라보았다.

코가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싸늘한 눈동자였다.


"뭘 하고 있었냐니, 딱 보기에도 쉬고 있는 중이지 않누?"
"아니, 그렇게 죽은 눈으로 말해도 아무런 설득력 없거든?"


레이가 일순 움찔한 것 같았지만 금세 미소를 띠었다. 아니 무슨 부실을 또 암흑 세계로 만들어놨어? 투덜거리며 가방을 내려 놓으려던 코가는 눈을 파고드는 반짝임에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애초에 말야 네놈, 이 시간이면 관 들어가서 자고 있을 시간 아니냐? 뭣하러 기어나와서는 부실을 이렇게 컴컴하게 만든 거야."


단순히 커튼 틈으로 들어온 빛이라기보다는 어딘가에 반사된 빛이었다. 대체 어디에 이렇게 빛이 비춰질 만한게 있어서 사람을 이렇게 짜증나게 만드는 건데?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린던 코가는, 곧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정말인데 말이지, 우리 멍멍이가 이렇게 믿어주지 않는다니... 슬프구먼."


레이의 관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잘 닫혀있었고, 그 뚜껑에는 못이 박혀있었다.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지 못하게 막아두듯이.

코가는 자신의 눈이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아 일어난 착시정도라고 애써 자기 합리화를 했다. 설마, 흡혈귀놈에게 저 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놈이 있을까. 그런데도 저기에 저렇게 못질을 해 놓은 녀석이 있을리가 없잖아.

하지만 잘못 본게 아니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익숙해 질수록 관 뚜껑에 박힌 못이 은은히 반짝이는 것만 선명하게 보였다.


"...멍멍아?"
"어이, 흡혈귀 네 녀석."
"왜 그러는가?"
"관뚜껑에 못은 왜 박아 놓은 거냐?"


레이가 입을 딱 다물었다. 코가는 내려놨던 자신의 가방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저렇게 못 박아 놓으면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그건 말이지,"
"되도 않는 변명은 집어치우고,"


레이의 말을 코가가 중간에 가로채고, 코가의 말을 중간에 끊은 것은,


덜컹


"...야."


못이 박힌 관 안에 있는 '무언가'가 몸부림 치듯 관이 덜컹거리는 소리였다.


덜컹덜컹

"뭔 짓을 한 거냐? 아니,"


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


"네 놈 뭐냐?"


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안돼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코가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레이의 얼굴에서 한순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완전히 가라앉아 죽은 눈동자,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그 얼굴에 코가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안의 본능이 비명을 질러댔다. 저 안에 있는게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곳에서 벗어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라고.


"이 몸은, 그저..."


그리고 코가는 망설이지 않고 부실의 문을 요란하게 열고, 도망쳤다.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복도를 달렸다. 선생님들이 본다면 잔소리를 하기 위해 쫓아올 만큼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사쿠마 레이가 쫓아오는 듯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코가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마주친 그가 정말 '사쿠마 레이'인가? 못 박힌 관 안에 있던 것은 대체 무엇인가? 창백하게 질린 코가가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그나마 현재의 그에게 익숙한 교실이었다.


"엥? 어, 오오가미? 무슨 일이야? 그렇게 창백하게 되어서는..."
"코기? 그 요란한 소리, 코기였던거?"
"오오가미 님이요?"


그 교실에 세 사람이 남아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고, 동시에 코가에게는 더없는 행운이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마오와 유즈루는 학생회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당번 일지를 쓰고 있었고, 리츠는 나이츠 연습이 레오를 찾느라 중단되어 겸사겸사 땡땡이를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외의 반 친구들은 전부 없었다.


"그, 그놈, 흡혈귀 그 자식이, 부실에서, 관이,"
"어이어이, 오오가미! 좀 진정해 봐! 부실? 사쿠마 선배를 말하는 거야?"
"거기서 그 놈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야. 짜증나게..."


알 수 없는 말을 더듬더듬 내뱉는 코가의 모습에 세 사람을 당황했지만 비교적 침착하게 코가를 진정시켰다.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코가를 앉히고-리츠는 그게 상당히 불만스러워 보였다- 미지근한 물을 건넸다. 유즈루도 본 적 없는 코가의 모습에 꽤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진정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코가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셋 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했다. 레이를 썩 좋아하지 않는 리츠 또한 마찬가지였다.


"뭔가... 딱 듣기에도 위험했다~라는 느낌이 팍팍 드네요."
"동감. 상황만 두고 보면 완전히 어딘가에 나오는 괴담이잖아?"
"어이, 릿치. 오늘 아침까지 네놈 형님은 멀쩡했냐?"


코가의 표정에 리츠는 완전 싫다는 표정을 했지만 대답은 성실했다.


"다들 알지만 나는 흡혈귀라고. 아침에 약하니까 말야? 마~군이 데리러 온 것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고, 애초에 아침부터 그 녀석을 볼 리도 없잖아."
"사쿠마 님..."
"정말이거든? 기억 안 나."


유즈루의 질책 섞인 어조에도 리츠의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아침마다 리츠를 챙겨 등교하는 마오도 자신이 아침에 레이를 본 적이 있나 고민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저 '평소와 같았다'가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의 전부였다.


"그럼 흡혈귀 자식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풍기게 된 건 등교 후부터인가..."
"그런데 말이야, 우리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거야? 사쿠마 선배가 이상하다면 한 번쯤 살피러 가야할 것 같은데."
"아무런 대책 없이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사라 님. 단순히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만으로도 '이상하다', '위험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일이라면 더욱 더요."


그건 그렇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는 마오를 뒤로 하고 코가는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완전히 죽어버린 붉은색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있지, 다들 요즘 도는 소문 들어 본 적 있어?"


나른히 마오의 등에 기대 있던 리츠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소문?"
"언제부터 돌기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꽤 유명한 것 같더라고. 이거. 이번 일이랑 확실하게 연관되어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냥 떠올랐어."
 "일단 말해주시겠습니까? 단순히 소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꽤나 많아서요."
"도플갱어."


리츠는 좀 더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인지 몸을 바로 세웠다. 도플갱어라면 꽤 유명한 도시괴담이었다. 존재할리 없는, 어떤 사람과 똑같이 생긴 존재. 그리고 도플갱어와 그 사람이 만나게 된다면 죽게 된다는 내용의. 어느 면에서 보나 완벽한 괴담.


"주된 내용은 잘 알려진 괴담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들은 건 좀 미묘한 부분이 있어서."
"어떤 건데?"
"옛날에 비해서, 지금은 인구 수가 몇십배는 많잖아? 그 이유가,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탈을 쓰고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그것과 도플갱어가 어떤 연관점이 있는 건가요?"


금방 연관 짓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 유즈루에게 조금만 기다려보라며 리츠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 '인간이 아닌 것' 중에 도플갱어가 있는 거야. SNS가 발달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쌍둥이 자매가 만나거나 하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곤 하는 현대사회지만, 그게 괜히 기적이라는 단어로 수식되는 일이겠어?
도플갱어는, 자신과 닮은 인간을 발견할 때까지 숨 죽이고 살다가... 그 인간을 발견하면 천역덕스럽게 그 인간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이야기. 현대 지구에는 사는 인간도 많지만 실종되는 인간도 엄청 많다고 하잖아? 그 중 일부가 진짜를 먹어치우고 진짜인 척 살고 있는 도플갱어일 거라고 하더라."
"...뭔가... 미묘하게 구체적인 이야기네 그거."


마오의 중얼거림에 그건 그렇다며 리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미묘한 기분이 드는게 아니라니까?


"흥미롭네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나도."
"그래서, 내 가설은. 코기가 부실에서 마주친 '그거'는 도플갱어, 관 안에서 덜컹더리며 몸부림치던게... 진짜 그 녀석이라는 거야. 설사 관 안에 있는게 그 녀석이 아니라고 해도, 관 안에 쳐박혀서 관짝에 못이 박힐 때까지 몸부림 한 번 안 쳐봤겠어? 코기가 갔을 때 조용했던 건 어떤 방식으로든 반항하던 그 녀석이 '그거'에게 굴복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잖아.
그런데 코기의 지적에 '맞아! 하지만 위험해!'라고 외치기라도 하듯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는 건 충분히 그 안에 있는 게 그 녀석이라는 가정을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녀석이 이렇게 길게 말 할 수 있는 녀석이었나... 표정으로 말하는 코가에게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내며 대답한 리츠는 다시 마오의 등에 자신의 몸을 기대었다.


"내 의견은 여기까지. 아, 지쳤어... 마~군~"
"벌써?! 뭐, 그래도 힘냈네. 사쿠마 선배 일이라서?"
"아니야."
"결국 저희가 부실에 한 번은 가야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 거군요."
"우리끼리만 가도 괜찮을까..."


네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당연히 네 사람 모두가 어깨를 들썩일 만큼 놀랐다.


"으, 응아아? 다들 와 그리 무서운 표정 짓고 있는거가...?"


놀란 건 문을 열고 들어온 미카도 마찬가지였다.

미카는 오늘 운이 좋게도 교내 아르바이트가 예정 되어있던 시간보다 몇 시간이 빨리 끝났다. 그 김에 수예부실에라도 들를까 했지만 그 날 아침 슈가 했던 말-의뢰가 있으니 먼저 가라던-을 떠올리고 그만두었다. 어차피 가보아도 본인이 도울 수 있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친구인 나루카미는 유닛 연습이 있다고 했는데, 시간만 괜찮다면 끝나고 함께 하교하자고 할까~ 그럼 어디서 시간을 때울까~ 하며 별 생각 없이 교실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마주친 것은 네 명의 반 친구들의 음울한 얼굴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게히라는 진짜 카게히라인거지?"
"???? 대체 먼 말을..."


그리고 그대로 붙잡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듣게 되었다. 평소의 마오에 비해 강압적인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지금은 한 명이라도 절실했다.


"그래서 미카링도 도와준다는 소리?"
"여까지 들었는디 도망가기도 쪼까... 글고 사쿠마 선배라면 스승님 친구이기도 하니께. 사실 스승님한테 도와달라고 하는게 빠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하는 중이라 스승님 방해하면 곤란타."
"그럼 슬슬 가볼까. 이야기는 충분히 나눈 것 같고, 이 정도 인원이면 무슨 문제가 생겨도 대처할 수 있겠지."


마오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가는 고개를 살짝 돌려 교실 벽면에 붙어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상당히 흘러버려 이미 시곗바늘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짐은 우짤낀가?"
"챙기기에 쉬운 건 그냥 들고가도 되겠지. 나도 도망칠 때 가방 들고 있었고."
"나는 마~군이면 충분해~"
"이제 슬슬 네 발로 걸어 리츠."
"저는 잠깐 도련님께 문자를 보내두겠습니다. 말 없이 가버리면 걱정하실테니까요."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한 곳으로 쏠린다. 핸드폰 벨소리는 미카의 자켓 주머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응아? 나루쨩?"
"나루카미? 아, 혹시 이제야 츠키나가 선배를 잡아왔다든가해서 연습 재개된건가. 그러면 너 가봐야하는 거 아냐?"
"싫은데..."
"네 녀석, 연습에는 좀 제때제때 나가라."
"지금은 피곤하다고~"


리츠와 코가는 꽁트같은 말을 몇 번이나 주고받았다. 한없이 가라앉은 분위기보다는 차라리 이 쪽이 나을지도. 마오는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여보세요? 나루쨩?"
《이거, 기대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미안하구먼.》
"... .... ...사쿠마 선배?"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좀 전과는 다른 점이라면 모두가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코가인 것 같았다.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몰라 입만 뻐끔거리던 도중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유즈루였다. 유즈루는 자신의 핸드폰 메시지 창에 글자를 띄워 미카에게 보여주었다.

<스피커 모드로 바꿔주세요.>


《후후, 그렇다네. 이 몸일세. 많이 놀랐나보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응해주세요. 이쪽이 상대방을 의심하고 있다는 티가 나지 않도록.>
<어째서 사쿠마 선배가 나루카미의 핸드폰으로 연락했는지도 물어봐.>
"아, 무, 뭐... 쪼까... 그보다 먼 일로 전화하신거가? 스승님한테 전할게 있다면 스승님을 직접 만나러 가는게 빨랐을 긴디... 글고 이거 나루쨩 번호인디 우째 사쿠마 선배가 이걸로 전화를...?"


유즈루의 핸드폰 옆으로 마오도 메모장에 글자를 띄웠다. 미카는 두 사람의 요구를 성실히 수행했다. 비록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사방좌우로 흔들리고 있고, 손은 식은땀으로 눅눅해진 정도였지만 목소리만은 크게 떨리지 않았다. 평소 슈의 혹독한 레슨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루카미 군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 건 당연히, 나루카미 군의 핸드폰을 빌렸으니 당연한걸세. 마침 근처에 있길래 부탁했더니 빌려주더군. 그리고, 카게히라 군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잠시간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사쿠마 선배...?"
《...아아, 아무 것도 아닐세. 굳이 직접 말해주지 않아도 곧 알게 되겠지. 대화 즐거웠네, 카게히라 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전화가 끊겼음을 알리는 기계음이 복도를 한가득 울렸다. 그와 동시에 복도를 메우고 있던 팽팽한 공기가 와르르 무너졌다.


"...나, 나루쨩, 나루쨩 쪽에도 가봐야 할 것 같은디, 우, 우짜믄,"
"경음악부실에는 저와 오오가미 님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나루카미 님이 근처에 있길래 핸드폰을 빌렸다고 했죠? 나루카미 님은 오늘 유닛 연습이 있고요. 핸드폰을 빌리기 위해서는 분명 그쪽으로 이동했을 테고, 현재도 그 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한 명이라도 많이 그 쪽으로 가는 편이 좋겠죠."
"나도 후시미의 말에 동의. 이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지금부터 움직이자! 알려줘야 할 게 있다면 전화나 문자로 해줘!"


마오의 말을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둘로 나뉘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흐른 만큼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게 불찰이었다. 뛰는 와중에도 절로 얼굴이 구겨지고, 이빨이 으득거리며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즈루는 그걸 전부 보고 들었지만 모르는 척 해주었다. 모르는 척의 의미가 없는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뛰기 시작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금방 부실에 도착했다. 코가가 문을 열고 도망쳤을 때와 달리 부실의 문은 얌전히 닫혀있었다. 유즈루는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쳐들어 갈 기세인 코가를 자신의 뒤에 두고 문에 귀를 댔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즈루가 코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서야 코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안에는 좀 전에 코가가 왔을 때와 같이 어두컴컴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만 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거의 악의가 느껴질 정도로 촘촘히 관 뚜껑에 박힌 못. 유즈루는 그걸 보며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껴야했다. 코가는 그걸 느끼지 못하기라도 한 듯 관에 달라붙어 뚜껑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어이, 흡혈귀 자식!!! 네 놈 지금 그 안에 있는 거냐! 대답해!"
"오오가미 님, 조금 진정하시고..."
"... ...멍멍아... 너무 시끄럽지 않누..."


그리고 관 사이로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에 오히려 더 광분해 달려드는 코가를 겨우 어르고 달랜 유즈루가 근처의 다른 부실에서 관 뚜껑을 뜯을 수 있을 만한 공구를 빌려왔고-일단 본인은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함께 관 뚜껑을 뜯기 시작했다.
아무리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이라지만 촘촘하게 못이 박힌 관 뚜껑을 뜯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고, 두 사람의 교복 셔츠가 땀에 젖을 때 쯤에야 관 뚜껑을 절반 정도 뜯어 낼 수 있었다.


"사쿠마 님!"
"야, 흡혈귀!! 야! 정신 차려봐!"


겨우겨우 관 뚜껑을 뜯어내며 확인한 레이의 안색은 평소보다 몇 배는 희게 질려있어 하마터면 죽은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수준이었다. 원래도 창백한 사람이니-게다가 흡혈귀 타이틀을 달고 있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게 한계란다 멍멍아..."
"젠장,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거냐고...!"
"현재 사쿠마 님의 상태가 안 좋아보이니 우선 텐쇼인 님께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오오가미 님은 사쿠마 님의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봐 주시고, 이사라 님에게도 연락해 주세요. '그것'은 이쪽에 없지 않습니까."


침착한 어투로 말하는 유즈루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았기에, 코가는 자신의 입술을 물어 뜯어 겨우겨우 진정해야했다. 다 죽어가는 흡혈귀를 앞에 두고 자신이 흥분해봤자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터였다.


"어이, 어이 사쿠마 선배! 정신 차려. 눈 뜰 수 있겠어?"
"무릴세... 지금은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도 힘들구먼..."
"어디가 안 좋아. 그 녀석이 뭘 어떻게 했길래 당신이 이 꼴이 나?"
"이 몸은 그저... 힘들어 보이길래, 도와주려고..."
"뭐?"


도와주려고? 좀 더 자세이 캐물으려는 코가의 질문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오오가미 님! 텐쇼인 님께서 지금 당장 이쪽으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텐쇼인 계열의 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니 최대한 사쿠마 님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라고."
"...쯧. 알겠어. 일단 이 끔찍한 몰골이 된 관에서 꺼내 놓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코가의 말대로 뚜껑이 엉망으로 뜯겨나간 관은 더 이상 관으로의 역할을 하지 못할 만큼 흉측한 모습이었다. 관의 몸체 부분은 강제로 뚜껑을 뜯는 과정에서 잔뜩 뒤틀렸고, 해체 과정에서 깨달은 거지만 그 쪽에도 못이 박혀있었다.
만약 코가가 왔을 때 그것이 관에 못을 받는 작업을 끝마친게 아니라 계속하는 중이었더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끔찍한 상상을 애써 털어냈다.


"저도 돕겠습니다. 이사라 님께 연락은?"
"아직. 뭔 일이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겠냐. 우리보다 한 명이나 많은데."
"그렇긴 하겠지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쿠마 님을 옮겨 놓고 해보도록 하는게 낫겠습니다."
"맘대로 해."


자세한 정황을 듣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코가는 식은땀 범벅이 되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가쁜 숨만 연신 내쉬고 있는 레이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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